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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uto/조각

[오비카카] 겨울 끝, 봄 시작

by MaEl 2016. 5. 11.

[오비카카] 겨울 끝, 봄 시작.

 

깜깜한 화면에 푸석한 제 얼굴이 비쳤다. 잔소리 들을 만도 하지. 오비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뺨을 쓸었다. 카카시가 보고 싶었다.

이번 주 토요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 가볍게 물은 질문에 그는 답이 없었다. 툭 치며 300일이잖아, 장난스럽게 이르자 카카시는 아차, 하는 표정이었다. 밀랍처럼 굳어가는 그것에 오비토 역시 입꼬리를 내렸다. 묘한 위화감. 구겨진 흰 와이셔츠의 주름을 보는 오비토다. , 많이 힘들지. 좀 쉬어요. 눈을 마주치면 버럭, 화를 내버릴 것만 같아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오비토.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약간의 귀찮음. 자신의 이름이 그렇게 불린다는 것이 끔찍해 몸을 돌렸다. 그로부터 벌써 4일째, 침묵을 지켰다. 좋아하는 음악으로 지정해둔 알람을 껐다. 환한 액정에 뜬 커다란 글자. 300. 풀썩, 침대에 몸을 던졌다.

권태기인가?”

말해놓고 몸부림을 쳤다. 이불을 감고 발을 굴렀다. 창밖으로 이른 벚꽃이 봉오리를 맺는 것을 보았다. 너저분한 책상 위에는 며칠간 고생해서 짠 데이트 코스가 있었다. 신난 마음에 날아다니는 글자들 아래엔 작은 하트까지 그려 넣었다. 혹시 비가 올까 실내코스로 짠 것도 있는데. 한구석에 자리한 통장은, 이리저리 바쁜 중에도 열심히 모은 데이트 비용이었다. 아아. 생각하면 할수록 우울하다. 오비토가 내던진 핸드폰에서 작게, 진동이 울렸다.

 

*

 

먼저 고백한 것은 오비토였다. 더 많이 좋아한 것도 자신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언제나 불안함이 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것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언제든 오비토를 잡아먹을 생각뿐이었다.

나도. 수줍게, 울 것처럼 눈시울을 붉히던 카카시. 끓어오르는 벅찬 감정에 와락 껴안았더니 조그만 웃음을 터트리던 카카시. 4년이란 차이를 넘어 일궈낸 사랑의 승리였다. 충분히 사랑을 주고받았는데. 시간의 차가 문제였을까. 오비토의 대학합격과 동시에 카카시를 만날 기회가 줄어들었다. 오비토는 대학 준비로 바빴고, 카카시는 회사생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먼저 연락하는 것은 오비토였고, 5번 중 3번은 시간이 없다며 거절당했다. 일이 먼저야? 내가 먼저야? 그런 멍청한 질문은 소설 속에서나 하는 줄 알았어. 오비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물론, 카카시가 들으면 뒤로 넘어갈 생각이었지만. 오비토와는 개인 과외로 인연을 맺었다. 무엇이 계기였을까. 맑은 눈동자 안에 작은 반짝거림을 발견한 순간부터? 시원한 입술이 어여쁜 호선을 그린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그의 손이 닿은 곳이 화끈거린다는 걸 깨달은 순간일까. 인지한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감정은 열쇠로 잠가 가둬두기엔 너무도 컸다. 틈 사이로 감정이 새는 것을 느끼자마자 오비토에게 작별을 고했다. 결국 그것은 짧은 이별이 되고 말았지만. 벚꽃이 저물고 싱그러운 초록빛이 수놓아진 나무 밑에서 고백을 받았다. 좋아해. 나뭇잎 사이로 빠져나온 햇살에 눈을 감았다. 핑계였고, 사실 눈물이 나왔다. 그것을 쓸어내려 주는 오비토의 손에 기대어 속삭였다. 나도.

 

*

 

햇볕이 내리쬐던 바닥에 겨울의 기운이 꿈틀거렸다. 전날 무리한 게 뻔히 보였다. 발갛게 채워진 오비토의 눈동자를 보며 이만 들어가자, 이르니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한숨을 쉬었다. 남겨둔 일거리가 계속 머리 한구석을 맴돌았다. 얼마 만에 만나는 거더라, 1주일? 2주일?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 그만두었다.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아주머니, 술 한 잔 더요! 애써 웃으며 외치는 것에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좋아해. 반짝이던 눈동자는 어디 가고 탁한 덩어리들만 가득이다. 있잖아, 우리는.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이대로라면 오비토에게 더러운 감정들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그래서. 300일이라고 들었을 때는 충격이었다. 그것도 모를 만큼 오비토에게 관심이 없었나. 일에 치여서 그래. 변명해보아도 돌아오는 건 쓰라린 심장이었다. 오비토. 이름을 부르자 그가 뒤돌아섰다. 멀리 캄캄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를 잡을 여유가 없었다. 축 처진 두 팔은 지긋지긋한 종이 위를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었으니까. 투둑. 하얀 것에 빨간 것이 떨어졌다. 손가락에 피가 묻어났다. 벌써 3일 연속 야근이었다. 괜찮은데 옆에서 난리였다. 고개를 숙이고 오비토를 생각했다. 보고 싶었다. 달력에 표시된 빨간 동그라미.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돼. 아무런 착신 음이 없는 핸드폰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고공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것처럼 심장이 뛰었고, 식은땀이 났고, 어지러웠다. 오비토를 보고 싶은데. 그 앞을 자꾸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치우려고 하자 단단한 팔에 막혔다. 억지로 뜯어내고 나자 또 다른 이가 둔중한 덩치로 오비토를 가렸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숨이 가빴다. 마지막을 쓰러트리고 그제야 밝아진 시야에 오비토가 있었다.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고개를 푹 숙인 그다. 무표정의 자신이 오비토의 앞에 서 있었다. 도르륵. 목이 멨다. 많이, 늦었지. 휴대폰을 들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

 

눈 밑이 거뭇하다. 오비토는 카카시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칭얼거릴 때는 언제고 또 어른스러운 척을 했다. 그가 옅게 웃었다.

미안해, 오비토.”

오비토의 집 앞에 서서, 카카시는 그렇게 말했다. 미안하다고. 오비토는 단 두 걸음만을 남겨둔 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추었다. 밧줄로 꽁꽁 싸매어두었던 것들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뭐가 미안해? 많이 만나지 못한 것? 기념일을 까먹은 것? 나한테 무관심했던 것? 왜 카카시가 사과해? 우리 이제 끝나는 거야? 울컥. 울컥. 울컥. 차가운 겨울바람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엉망진창이 된 호흡을 고르고 카카시를 쳐다봤다. 그새 붉어진 눈은 투명하고 뜨거운 것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아. 그럼에도, 그럼에도 자신은 봄을 바랐다. 카카시가 좋았고, 그를 원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미안함과 죄책감의 응집이었다. 당황해 연신 눈물을 훔쳐도 그대로였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날카로운 창이 되어 꽂힌 오비토의 말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꾹꾹 눌러 쌓아둔 말들이 스프링처럼 튀어나와 박힌 것이었다. 미안, 미안해. 끝내자는 게 아니야. 그저, 사과하고 싶었어. 미안해. ? 오비토. 맺힌 눈물에 앞이 흐릿했다. 별안간 몸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카카시는 오비토에게 안겼다. 꽉 안아오는 팔에 결국 엉엉, 울고 말았다. 마주 안고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

 

소파에 앉아 코를 훌쩍였다. 어떨 때 보면 꼭 카카시가 나보다 더 어린 것 같다니까. 부드러운 휴지에 코를 팽, 풀고 눈을 흘기자 오비토가 실소했다. 카카시의 옆에 오비토가 앉으니 소파가 푹 들어갔다.

더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다.”

어리광부리는 거. 어어, 그래, 대충 대답하며 넥타이를 슬쩍 풀었다. 한참을 울어 열이 오른 탓이다.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멎고 나니 어색해졌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또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오비토. 카카시. , 먼저 말해요. 똑바로 마주 봐오는 오비토의 눈빛에서 조금씩 먹구름이 걷혀 카카시는 안심할 수 있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그냥 나온 건 아니야, 그렇지? . 금세 굳어지는 오비토의 얼굴에 카카시가 그렇게 심각해지지 말라며 웃었다. 가끔 이렇게 싸우는 건 어쩔 수 없어. 오비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꼬물거리는 그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 언제까지나 함께할 수 있다면.

나는 널 좋아하고, 너도 날,”

좋아해!”

 

맞잡은 손을 꽉 쥐며 외치는 오비토다. 카카시는 남아있던 불안함마저 푸른 하늘로 날려버리는 시원한 그의 말에 하하, 웃고 말았다.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인데, 이것 하나만 말할게.

불안해하지 말자.”

내가 말하고 싶은 것도 그거였어.”

우리 통했네. 사랑의 총알을 빵, 쏘는 손짓으로 장난스럽게 표정을 구겼다. 어이구. 오비토의 까만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다. 오비토는 카카시의 무릎에 머리를 떨어트렸다. 오비토? 오늘 300일이잖아. 그렇, . 뭐할까? 원하는 대로 해도 돼, 오비토. 내가 일정도 짜고, 완전 기대하고 있었는데……. 미안해, ? . 가볍게 그의 입술에 자신의 것을 가져다 댄 카카시가 입꼬리를 올렸다. 오비토의 얼굴이 금방 벌게지더니 이내 눈을 똑바로 뜨고 한 번 더, 한다. 그래, 그래. 대답하곤 고개를 숙였다.

 

300. 겨울의 끝, 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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