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카카] T
안녕하세요. 저는 타임테이커(time taker)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시간 여행자라고도 부르고요, 저승사자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네요. 타임테이커도 제가 편하라고 붙인 거지 정말 제 이름이나, 혹은 직함도 아니에요.
저는 둘입니다. 두 사람. 마치 쌍둥이처럼. 제가 오른손을 들면 저는 왼손을 들어요. 거울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과도 같죠. 제가 웃으면 저는 웃어요.
저는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고, 저는 미래의 시간을 가져옵니다. 저에게 어떤 부탁을 할지는 온전히 당신의 몫이에요. 그에 관한 결과와, 책임도. 물론 여기에서 일어난 일은 기억 못 하겠지만요. 보통은 다들 과거로 가요. 미래로 보내달라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네요.
간절한 사람만이 나를 만날 수 있어요. 정말 간절한 사람이요. 정도에 대한 판단은 저희가 하지 않아요. 그냥 오게 되는 걸요. 시간의 방에. 오, 거창한 이름이네요. 그냥 골동품이 넘쳐나는 방 하나라고 해두죠. 그들에게 저는, 아, 누가 왔네요.
* * *
오비토는 눈을 깜빡였다. 당혹감에 젖은 새카만 눈동자는 눈앞의 상대를 응시했다. 자신이 잘 아는 사람. 자신이 막지 못한 사람. 죄책감이 겨울 눈덩이처럼 불어나 무너져 내렸다. 턱, 숨이 막혔다. 그는 주저앉은 바닥에서 일어나 하얀 머리의 사내에게 걸어갔다. 얇은 어깨를 덥석, 잡았다. 입이 덜덜 떨렸다. 이대로 뱉었다간 말이 아닌 것이 튀어나올 것 같아 오비토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사내는 어리둥절한 표정도 없이 해사했다. 웃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이 본 그의 마지막 표정과 닮아있어 오비토는 눈을 감았다, 가 떴다.
“왜 그랬어?”
“…….”
“왜 그랬냐고 묻잖아!”
금세 목소리가 높아졌다. 오비토는 여전히 사내의 어깨를 잡은 채로 그를 흔들었다. 힘없이 고개가 따라 흔들리는 것을 본 오비토는 당장에 행동을 그만두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한 질문이었다. 왜 그랬어? 대체 왜 그랬어. 왜 사람을 죽였어. 어째서. 알고 있었음에도 말리지 못한 자신을 혐오했다. 꿈에서조차 그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손에서 힘을 풀고 툭, 고개와 함께 팔을 밑으로 떨어트렸다.
“겨우 진정되신 것 같네요. 과거랑 미래, 어디로 가실래요?”
의미 모를 소리에 오비토는 카카시를 쳐다봤다. 그래, 카카시였다. 분명 카카시의 얼굴인데.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사내, 카카시는 싱긋 웃었다.
“저는 당신을 과거로도, 미래로도 보내줄 수 있어요.”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황당함에 멋대로 튀어나간 말이다. 그제야 자신의 주위를 살피자 온통 옻칠한 나무로 만든, 쓰임새를 알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카카시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순간, 일렁이더니 그가 둘이 되었다. 자책감이 만들어낸 환상인가. 이대로 카카시가 불어나 버린다면 오비토는 자신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똑같이 말했으며, 거울을 사이에 둔 것처럼 행동했다. 지끈. 머리가 아팠다. 카카시의 목소리가 양쪽에서 울렸다.
첫째, 당신은 당신의 과거나 미래로 갈 수 있다.
둘째, 당신은 그 어떠한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
셋째, 당신이 선택한 것에 관한 결과는 당신이 책임져야 한다.
넷째, 당신은 여기에서 일어난 일을 잊는다.
다섯째, 과거로 갈 경우 당신이 겪었던 당시의 과거는 잊는다.
머릿속을 파고들어 갉아먹는 듯했다. 왜 그랬냐고? 내가 알려줘야 해? 차가운 목소리. 차가운 눈동자. 차가운. 차가운. 차가운. 돌아간다면. 과거로 간다면. 다시 한 번 그때의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무언가가 바뀌긴 할까?
결국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오비토는 생각했다.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나.
* * *
“미래.”
“정말입니까?”
“응.”
“알겠습니다. 그럼.”
짧은 묵례를 마지막으로 두 명의 오비토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미래의 자신은 그와 있지 않겠지. 떠났으니까. 애초에 너무 많은 감정을 품었다. 사람을 죽였었고, 죽여야만 했다. 그렇잖아. 어렸을 때부터 그랬으니까.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렇게, 그렇게.
환한 빛이 걷히고 카카시는 찡그린 눈앞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선명히 망막에 맺혔을 때 카카시는 숨을 들이켰다. 자신이 만든 상처를 한쪽 얼굴에 매단 사람. 언제나 자신에게 이유를 요구한 사람. 입을 여는 순간 카카시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영상이, 사진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웃었다.
“또 왔네.”
“너 출소할 때까지 올 거야.”
'Naruto > 조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비카카] 겨울 끝, 봄 시작 (0) | 2016.05.11 |
---|---|
[오비카카] 있음에도 없는 (0) | 2016.03.13 |
[오비카카] 조각글 여러개(160213) (0) | 2016.02.16 |
[오비카카] The Red Shoes (0) | 2016.01.31 |
[오비카카] 공포게임하는 오비카카 썰 (0) | 2016.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