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카카] 마음에 날개를
01.
하늘을 바라보면, 커다란 날개를 널리 펄럭이며 날아가는 이들이 있다. 하나같이 웃는 모습으로. 자신의 위를 스쳐 가는 바람을 깨닫고 고개를 들면, 보였다. 미소. 웃음. 밝음. 카카시는 자신의 꼬질꼬질한 발가락을 내려다보며 꾹, 입술을 물었다.
02.
모질이. 모자란 놈. 그렇게 불렸다. 골목 아이들의 새하얀 날카로움. 그것은 카카시의 등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해진 윗옷의 구멍 사이로 보이는, 딱지가 앉아버린 상처. ‘너를 사랑해줄 사람은 없어!’ 눈동자를 치켜뜨고 외치는 것에 또 베였다. 길게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03.
“또 다쳐서 왔구나.”
“죄송해요.”
베개에 머리를 묻고, 커다란 몸을 구기며 대답했다. 의사는 한숨을 폭 내쉬고 소독약에 적신 솜을 카카시의 상처에 가볍게 갖다 대었다. 아, 따가! 소리와 함께 열린 병원 문 사이로 남자아이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침대에 엎드린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카카시가 입도 벙끗하지 못하자 의사는 또다시 한숨을 쉬며 꼬마를 불렀다. 오비토. 네! 들어와서 거즈 좀 잘라줄래? 그럴게요! 씩씩하게 걸어 들어온 오비토의 눈이 카카시의 불안한 눈동자와 마주쳤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버린 카카시다. 오비토는 그의 상처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심한 말을 했을까. 아직 날개도 받지 못한 사람인데. 눈대중으로 대충 길이를 잰 오비토는 능숙한 가위질로 거즈를 잘라냈다. 전화가 울었고, 의사가 그것을 받으러 간 사이, 아이는 작지만 단단한 손으로 상처 부위에 하얀 면을 덧댔다. 흠칫. 떨리는 등에 오비토가 얼른 손을 뗐다. 아팠어요? 아, 아, 아뇨! 말을 더듬었다. 오비토는 알 수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언제나 말하고, 놀려대는 사람이란 걸. 관심이 없었던 그는 곧잘 이야기를 무시하곤 했다. 조막만한 손을 꽉 쥐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 사람이 이렇게 큰 상처를 받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 애들을 가만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오비토의 작은 날개가 파득, 떨렸다. 크고 작은 상처들을 눈에 담는 오비토다. 담고, 또 담았다.
“아저씨, 저랑 같이 다닐래요?”
04.
어쩔 줄 몰라 했다. 손톱을 물어뜯는 카카시를 보며 오비토는 픽, 웃어버렸다. 손을 내리다가 팔뚝에 자리한 멍을 보고 또 쓴웃음을 삼켰다. 말로 인한 상처는 등에만 생기니 저건 분명 넘어져서 생긴 것이리라.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을 잡았다. 불안해하지 마요. 자신보다 한참은 큰 카카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있잖아. 으, 응…….
05.
웬 꼬마가 자신을 지켜준다고 했다. 아이는 언제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카카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전화를 받고 돌아온 의사가 허허 웃으며 그러라고 하기에 엉거주춤 아이가 내민 손을 잡았다.
병원에서 나서자마자 아이들이 보였다. 전부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자신을 쳐다봤다. 날카로운 눈매. 날카로운 입매. 날카로운. 번뜩이는. 날붙이가. 전부. 자신을. 카카시는 질끈 눈을 감았다. 곧 다가올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서. 1초, 2초, 3초.
“저리 안 가?!”
예상치 못한 소리에 눈을 떴다. 자신의 키의 반도 되지 않는 꼬마가 허리에 손을 짚고 떡하니 서서 외치고 있었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하면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입을 오물거리더니 하나, 둘, 그 자리를 벗어났다. 오비토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내가 지켜줄게요.
06.
그것의 반복이었다. 아이들이 말을 내뱉으려 치면 오비토가 막아섰다. 윽박지르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더는 카카시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카카시는 잿더미 가득한 화로 옆 흔들의자에 앉아 동화책을 읽는 오비토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 시선이 느껴졌는지 오비토가 고개를 들어 카카시와 눈을 마주했다. 씩 웃었다. 그 표정이 책에서만 보았던 개구쟁이 어린이와 한 치의 다름도 없어 카카시는 무심코 미소 지었다. 오비토의 눈이 커졌다. 아저씨, 웃을 줄 아네! 예쁘다. 웃어봐! 맑은 말이, 한 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았다. 따뜻했다. 카카시는 포근함에 젖어 울음을 터트렸다. 어, 울리려던 게 아닌데. 에이. 왜 울고 그래요.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린 오비토가 얼른 카카시의 곁에 오더니 그의 고개를 안아주었다.
07.
등이 간지러워. 카카시는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몸을 돌렸다. 상처가 덧난 것은 아닌지 걱정된 탓이다. 병원에 가볼까. 오비토도 아마 그곳에 있을 것이다. 가끔 의사의 일을 도와주러 간다고 했으니까. 창밖에는 비가 후두둑 떨어졌다. 우산을 들고 문을 열었다. 더 이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08.
“그래도, 걔는 너 싫어할걸!”
“의사 할아버지가 시켜서 억지로 한 거야!”
차라리 귀머거리라면 좋았을 텐데.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왜 들을 수는 있는지. 그럴 리가 없다며 부정해 봐도 이미 박힌 상처는 빼낼 수 없었다. 진득한 피가 낡은 옷에 묻어났다. 쓰라린 고통이 찾아왔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잖아. 늘 스스로 위로했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왜.
눈앞에 오비토의 미소가 아른거렸다. 병원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렸다.
09.
똑똑
“카카시 아저씨, 있어요?”
밤이 깊었다. 커튼을 치고 침대에 앉아있었다. 상처가 아파 누울 수 없었다. 아니, 잠이 오지 않았다. 카카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어두컴컴한 방 안으로 오비토가 들어섰다. 아저씨. 오늘 못 와서 미안해요. 병원 일이 너무 바빠서…….
우물거리며 이야기하다 카카시의 등에 손이 닿았다. 진득하고, 축축하고. 오비토는 표정을 구겼다.
“다쳤잖아요!”
또 누가 이랬어요? 또 그 애들이야? 탁자에 자리한 등을 켰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도 또렷이 보이는 상처. 이미 굳어버린 피는 옷에 달라붙어 잘 떼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비토는 자신을 탓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오는 것을 빼먹지만 않았다면.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고개를 숙인 카카시가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아프다. 쓰라리다. 둔한 통증은 조금씩 가슴을 좀 먹었다. 울지 않으려 입술을 앙 물고 카카시의 앞으로 걸어갔다. 빛이 닿지 않아 그림자가 진 얼굴은 무너져 있었다. 억지로 그의 고개를 들어 올리자 새카맣게 죽은 눈이 보였다. 깊은 바다에 가라앉아 이미 포기해 버린 사람.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가 버린 것 같았다.
“아, 아무도, 나, 날 조, 좋아하지 않아.”
“누가 그래요.”
“나, 나는 날개, 날개가 없어.”
오비토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처럼 붉은 눈을 한 채 카카시의 목을 안았다. 누가 그래요, 누가 그래요. 아저씨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날개가 없는 건 아직 그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응? 아저씨. 그러니까.
“너, 너는?”
질문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었다. 아저씨, 나 봐요. 시선을 돌리고 있던 카카시가 천천히, 그와 눈을 마주쳤다. 오비토는 눈물이 맺혀 빛이 일렁이는 것을 슬쩍 닦아주었다. 나는 말이죠, 아저씨를.
“좋아해요!”
얘기하며 웃어 보였다. 모든 것이 서투른 사람이었다. 요리부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까지. 곁에서 지켜줬다. 조심스럽게. 퍼부어버리면 깨질까 봐. 고개를 저었다. 아니, 더 사랑해줬어야 했다. 퍼부었어야했다. 그랬으면.
카카시가 팔을 들어 올려 오비토의 허리를 감았다. 혹시라도 그가 떠날까 봐 조바심을 내면서 꽉 껴안았다. 결국 울음이 터진 그에게서 흐윽, 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오비토도 역시 투명한 눈으로 슬쩍 웃음을 흘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을 깜빡인 순간,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의심했다. 새하얀 깃털, 커다란 날개. 갑작스러운 ‘받음’에 놀란 오비토는 어벙한 표정이다. 카카시 아저씨! 받음! 아저씨, 받음! 카카시는 여전히 깨닫지 못한 듯 붉은 눈을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저씨 날개 생겼다구요! 그제야 고개를 꺾더니 홱, 오비토 쪽으로 원상복귀 시켰다. 이, 이, 이거 어떡하지?
10.
“아저씨, 나 왔어요!”
오비토가 빵 봉투를 품에 안고 안으로 들어섰다. 고소한 빵 냄새가 작은 집안에 금방 퍼졌다. 카카시는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햇빛이 창을 통과해 나무 바닥에 닿았다. 커다란 날개가 만든 투명한 그림자는 햇빛과 함께 바닥에 닿아 그것을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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