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카카] 오로라의 끝에.
ㅡ 오비토 생일 축전.
허연 입김이 눈앞의 공중에 흩어졌다. 그대로 얼려버리는, 서늘한 공기에. 오비토는 두꺼운 장갑을 낀 손으로 얇은 책자를 넘기려 애썼다. 극단. 세상의 끝. 오비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바닥 아래에서 뿌득거리며 달라붙는 눈의 소리마저 집어삼켰다. 새하얀 눈의 세계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금방이라도 아래로 내려올 듯 가까웠다. 얼음이 얼어 아래로 주렁주렁 매달린 것을 오비토는 툭, 건드렸다.
“기다려. 꼭 보여줄게.”
앞으로 몇 시간. 오비토는 빌었다. 오로라가 나타나기를. 주먹을 쥐었다. 눈을 닮은 하얀 머리의 남자가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힘내, 기다릴게. 파슥. 앙상한 가지 위에 아슬하게 놓여있던 눈이 오비토의 작은 움직임만으로 떨어졌다.
일생일대의 소원이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카카시는 대답했다. 오로라가 보고 싶다고. 거대한 빛의 장막을 보고 싶다고. 카카시는 오비토에게 되물었고, 그는 그 날로 정했다. 평생의 소원은 카카시와 오로라를 보는 것이라고. 그게 뭐야. 실없이 웃는 미소 사이에 기쁨이 숨어든 것을 오비토는 모르지 않았다.
눈을 뜨면 오로라와 카카시를 생각하고, 자기 전에 오로라와 카카시를 생각했다. 꿈에서도 오비토와 카카시는 오로라를 보고 있었다. 전날 밤 꿈을 볼을 발갛게 붉히며 얘기하자 카카시는 또 웃었다. 꼭 가자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입술을 맞대고 약속했다. 꼭, 가자고. 반드시.
금방이라도 일어나 자신을 보고 웃어줄 것만 같았다. 오비토는 뜨거움을 알았다. 배 밑바닥부터 달아오르기 시작해서 목을 통과해 눈으로 나왔다. 얼굴을 타고 흐른 그것은 카카시에게 닿았지만. 기척에 그가 눈을 뜨는 일은 없었다. 자신의 몸에서 나온 열기보다 더 뜨거울 리도 없는 곳에서 불살라진 카카시를 오비토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안아들기 힘들었던 그의 몸을 너무나도 가볍게 쥐고 있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비토는 하고 있던 모든 일을 내팽개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말려도 오비토는 꿈쩍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그렇게만 대꾸할 뿐 오비토는 무엇을 할 건지, 어디로 갈 건지조차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너와 나, 단둘이서. 오비토는 생각했다.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아. 그럴 수 없지. 안 그래? 너와 나만의 약속인걸.
2월 9일. 오비토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비행기에서 내렸다. 차를 빌려 쭉 뻗은 도로를 달렸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잠도 오지 않았다. 허허벌판에 멈추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게 갠 하늘이 오비토의 눈동자를 가득 메웠다. 강한 확신에 오비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볼 수 있어. 카카시. 보여줄게. 매서운 바람이 오비토의 뺨을 할퀴고 지나갔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까만 어둠에서 카카시의 웃는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라 깬 오비토다. 습관처럼 바라본 하늘에는. 입을 쩍 벌렸다. 오로라다! 희미하지만 확실했다.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하늘에 드리워진 장막이 오비토의 눈앞에 펼쳐졌다. 시동을 걸고 힘차게 발을 눌렀다.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자동차는 오로라를 쫓고 있었다. 오비토는 흥분으로 눈가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약속의 날까지 앞으로 40분.
오로라의 끝은 어때? 그와 눈을 맞추지 않고 허공을 응시하며 멍청히 물었다. 카카시 역시 활자에 시선을 고정하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오로라의 끝은 우주야. 지구에선 아무리 뒤꽁무니를 쫓아도 그 끝을 볼 순 없어. 똑똑하네. ……그래도 한 번 쫓아볼까? 그러던가.
빛의 장막을 쫓았다. 반짝임을 하늘에 뿌리며 점점 넓이를 더해갔다. 길이 없는 곳까지 자동차를 타고 따라가다 질퍽이는 땅에 바퀴가 걸리자 오비토는 차를 버리고 달렸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하아. 무릎과 발목에 감각이 없었다. 코끝은 발갛게 얼었고 차가운 공기를 넘기는 입술은 말라비틀어졌다. 오비토는 그래도 달렸다. 오로라를 따라. 오로라보다 먼저. 응, 보여주기로 약속했으니까. 주먹을 꽉 쥐고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미끄러운 눈길에 발을 헛디뎠다. 몸이 앞으로 쏠려 몇 발 더 자국을 남기다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얼른 일어나 빨간 털장갑에 붙은 눈을 털어냈다. 금세 녹아 털을 적셨다. 오비토는 그것을 바지에 슥슥 문질러 닦았다. 카카시가 준 것이었다. 자신은 보라색 장갑을 줬더랬다.
고개를 끄덕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로라는 더욱 선명하게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오비토는 눈을 비볐다. 젖은 장갑이 닿아 차가웠다. 장갑을 벗을 생각을 못 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뺨을 꼬집었다. 꽁꽁 얼었지만 그럼에도 선명한 감각에 오비토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오로라의 끝이었다.
뒤로 돌아 올려다본 하늘만 해도 거대한 장막이 밤하늘을 비취색으로 뒤덮고 있었다. 이어진 오로라를 따라 고개를 옮기자 어느 순간 실과도 같이 얇아진 오로라는 그 끝을 보이고 있었다.
“카카시, 보여?”
3초. 2초. 1초.
“우리가 약속했던 날이야.”
2월 10일. 오비토의 생일날 오로라를 보기로 했었다. 시린 눈에 열기가 고였다. 입 밖으로 내뿜은 숨과 함께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같이 보면 좋을 텐데. 그렇지, 카카시. 별빛의 반짝거림을 품은 오로라가 흔들린 것도 같았다. 눈을 감았다 뜨자 금방 식어버린 것이 흔적을 따라 뺨을 타고 흘렀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오비토!
그리운 음색에 앞을 보았더니 카카시가 있었다. 입을 헤 벌리고 자신을 쳐다보는 오비토가 우스웠는지 카카시가 피식 작은 미소를 흘렸다. 어째서? 오비토는 제자리에 멍하게 섰다. 오로라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일렁였다.
“언제 왔어.”
“언, 제 왔냐니. 너야말로 왜 여기에 있어? 아니, 왜, …왜?”
꽁꽁 얼어붙은 오비토의 손에 카카시는 핫팩을 쥐여 주었다. 엉망진창인 오비토의 질문에 답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비토는 그것이 답답해 다시 한 번 물었지만 카카시는 무슨 소리냐며 정신 좀 차리라고 면박을 줄 뿐이었다. 같이 보러오기로 했잖아. 그랬, 지.
볼을 꼬집는 것은 그만두었다.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해서. 오비토는 헤실, 웃었다. 응, 같이 보러오기로 했지. 카카시는 김빠진다는 듯 어깨를 으쓱, 했다.
“예쁘다.”
“아까부터 계속 그 소리야.”
오비토가 그에게 건넨 말은 어언 8개월 만이었지만, 그것을 받아드는 카카시는 아닌 모양이었다. 오비토는 흐흐, 하고 웃었다. 카카시는 그의 이상한 웃음소리에 변함없이 표정을 구겼다. 드넓게 펼쳐진 오로라는 그 기세를 죽일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여신의 치맛자락과도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잡고 있는 카카시의 손이 차가웠다. 오비토는 그에게 받은 핫팩을 꼭 잡은 두 손 사이에 끼워 넣었다. 카카시가 돌아보지도 않고 피식 웃는 것을 오비토는 알 수 있었다. 따라 웃었다. 생일 축하해. 고마워.
계속 함께 있자.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야. 카카시가 닭살 돋는다며 부르르 떠는 것을, 오비토는 똑똑히 지켜보았다.
해가 떠올랐다. 오로라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두 사람이 있던 곳에는 빨간색과 보라색의 털장갑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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