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카카] 너울
ㅡ side story.
오비토는 몰랐다. 카카시도 몰랐다. 새카만 잠에서 깨어나, 그 앞에 나타난 것이 그토록 익숙한 바다일 줄이야. 어떡할래? 이르는 말에 일단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별빛을 잡아먹으며 휘영청 달이 떠있으니, 발을 지면에서 떼어놓고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은 없을 터다. 익숙한 파도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 * *
“놀러가자. 등대 일은 잠깐 쉬고 말이야.”
갑자기 말했다. 응, 갑자기. 카카시는 한참 동안 오비토를 묵묵히 응시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싶어서. 물론 몇 시간을 쳐다보든 오비토의 말이 바뀔 리 없었다.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 역시. 카카시는 알고 있었다. 그 무의미한 행동에 오비토는 눈을 피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가끔은 기분전환 하는 것도 좋잖아. 안 그래, 카카시?
오른팔은 가끔 저릿하다고 오비토가 말했다. 하얀 붕대를 푼 팔에는 뼈가 제대로 붙었는지 붉은 자국도, 부어오른 자국조차 없었다. 그래도 가끔, 정말 가끔. 저리다고. 카카시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오비토의 팔을 주물러주었다.
“등대는 누구한테 맡기고?”
“우리 할배.”
무리하시는 거 아냐? 걱정스럽게 묻자 고개를 휘휘 저었다. 허락받고 왔어. 괜찮으시대. 한 달을 맡기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3일인데. ……4일이 될 수도 있고? 울퉁불퉁한 손가락을 쭉, 3개 펴더니 곧이어 자신 없는 목소리로 새끼손가락을 더 들었다.
내일모레면 30살. 아저씨라고 들어도 웃으며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있던 곳을 벗어나는 여행은 즐겁다. 앙증맞은 바퀴가 달린 가방에 옷가지를 챙겨 넣으면서 카카시는 생각했다.
어디로 갈 거야? 오비토는 예정이 없다고 대답했다. 두 사람 다 서두를 것 없는 여행이었다. 섬을 빠져나가서 눈요기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갑자기 떠난 여행이니만큼 바삐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고, 오비토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카카시는 굳이 말꼬리를 잡지 않았다.
온기를 뿜어대는 태양이 지면을 데웠다. 파도를 따라 울렁거리는 배를 타고 섬을 빠져나와 밟은 시멘트 바닥은 그리 새로운 느낌이 되지 못했다. 불뚝 튀어나온 작은 돌멩이가 바퀴에 부딪히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섬 밖으로 나온 적이 별로 없다 그랬나?”
“아, 응. 어렸을 때 몇 번. 고기 잡는 걸 더 좋아했으니까.”
선글라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오비토의 눈. 카카시는 생각했다. 그럼 왜 갑자기 자신과 함께 섬 밖으로 나올 것을 원했는지. 많은 선택지가 모두 자신이 정답이라고 외쳤다. 드륵, 드륵. 바닥을 긁는 소리가 외침을 몰아냈다. 뭐, 됐나.
카카시가 기억하는 도시는 회색으로 뒤덮인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눈부시고 맑았던 것이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사고와 함께? 아니, 그 전부터. 반듯하게 이어진 도로를 따라 달리는 차들의 행렬에 카카시는 녹아들었다. 그 끝에 무엇이 있었는지, 왜 달리고 있었는지. 카카시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나지 않았다. 이미 지나간 일을 생각하는 것도 우습다. 카카시는 피식, 웃고 말았다. 오비토가 고개를 돌리는 것에 그는 아무것도 아니야, 라며 대꾸했다. 심장이 기분 좋게 뛰었다.
택시를 잡았다. 제법 무거운 가방을 들고 카카시는 ‘가까운 역으로 가주세요’, 일렀다. 오비토는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뭐가 보이려나. 알아서 하겠지.
가벼운 침묵이 맴돌았다. 불편하지 않은 침묵. 그것에 에어컨을 서늘한 공기가 섞여들었다. 휙휙 바뀌는 풍경은 카카시가 기억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번화가.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음에도 화려한 불빛이 잔상을 남기는 것을 바라보면서 오비토는 별안간 뛰는 심장을 붙잡기에 바빴다. 긴장? 기대? 감정이 섞여 만들어내는 묘한 느낌에 오비토는 장이 꼬일 것만 같았다.
‘카카시와 함께 있고 싶다.’ 단순하고 명확한 감정이었다.
‘카카시랑만 있고 싶다.’ 복잡하고 생소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일단 그는 저질러 보기로 했다. 한자리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그의 특기가 아니었다. 이번 여행 역시 그가 저지른 결과였다.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서도 오비토는 손에 땀이 맺혔다. 필터를 청소하지 않았는지 눅눅한 냄새가 났다.
‘잘해보아라.’
능글능글한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 아니, 왜 그런 말을 하지. 알고 있었나? 눈치챘나? 오비토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어느새 훌쩍 자란 풀잎에 맺힌 물방울이 여름 햇살을 받아 반짝 빛났다. 뭐라고 대답했더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 * *
피곤하다. 좀 잘래? 깨워줄게. 여전히 목적지는 불명확. 그것에 카카시도 오비토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역을 지나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보이면 내리기로 했으니까. 역 사이는 캄캄한 지하일 때도 있고 풍경이 보이는 지상일 때도 있었다. 오비토는 역 이름이 마음에 드는 곳에 하차하기로 마음먹었다.
살풋 어깨에 닿는 카카시의 무게. 상당히 지쳤는지 금방 잠들어버린 그를 보면서 오비토는 기분 좋게 웃었다. 백색에 가까운 재색 머리카락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두근, 두근. 가볍게, 혹은 무겁게 뛰는 고동 소리가 초침의 소리처럼 일정했다. 하나, 둘, 셋, 넷. 맨살에 닿는 온기를 느끼면서 오비토는 심장박동을 셌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스르르, 눈이 감겼다.
지하철은 캄캄한 터널을 잠시 빠져나와 지상을 달렸다. 땅바닥에 온기를 쏟아 부어 자신을 한껏 안기던 태양이 서서히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 만나자며 내뿜는 주홍색 빛이 커다란 유리창을 통과했다. 두 사람의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햇빛은 자그만 따뜻함을 남겼다. 천천히 부드럽게 몸을 쓰다듬고 지나간 것은 발끝에도 닿아, 어느 순간 사라졌다.
오비토. 좀 일어나봐. 단단한 목소리가 잠을 깨웠다.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뜬 오비토는 휑한 풍경에 한 번 놀랐다. 번쩍 정신이 든 그는 역에 내려섰다. 시계를 확인한 그는 생각보다 늦은 시간에 두 번 놀랐다. 왜? 뭐 왜긴 왜야. 잠들어서 그렇지.
“일단 나가자.”
물먹은 솜같이 무거운 가방을 들고 긴 계단을 올라가자 아니나 다를까 하늘은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종점까지 와버린 거야? 그런 것 같네. 카카시가 허허, 숨이 섞인 웃음소리를 냈다. 지금 상황이 상당히 우스운 모양이었다. 으음. 오비토는 느긋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사람 사는 곳인데 설마 얼어 죽으려고. 여름밤이라 그렇게 춥지도 않다.
눈앞에 보이는 탁 트인 도로와 그 옆에 나란히 붙어있는 좁은 인도. 희미하게 불빛이 켜진 가로등. 정말 간간이 지나다니는 사람. 오비토와 카카시는 직진했다. 보도블록 위를 지나는 바퀴 소리가 또 적막을 채웠다.
“바다지?”
“응, 바다.”
몇십 분 걸었다. 오비토가 먼저 짠 내를 맡았다. 그리고 그 냄새에 익숙해진 카카시도 그것을 알아차렸다. 설마. 발걸음이 빨라졌다. 길모퉁이를 돌자, 보였다. 너울거리는 익숙한 파도. 솟았다가 내리치며 만들어내는 소리. 얼음처럼. 그래, 한여름에 마치 얼음처럼. 두 사람은 제자리에 굳었다. 일정한 리듬으로 드르륵, 드르륵거리던 소리도 멈추었다.
아하하! 눈이 마주치자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다른 누군가가 보았다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를 만큼 웃어댔다. 끅끅대며 웃음을 채 멈추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서로 보고 또 웃음이 터졌다. 기껏 섬에서 빠져나와 도착한 곳이 바다라니. 고기잡이하면서, 등대를 지키면서 신물 나게 보았던 바다라니.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어떡할래?”
“일단 주변에 숙소 없나 돌아보자.”
으응. 자기가 물어놓고 대답이 영 미지근했다. 오비토는 그런 카카시를 빤히 바라보았다. 언제 보아도 어여쁜 사람은 가슴을 덜컹, 내려앉게 만드는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카시? 아, 응. 미안. 오비토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하는 카카시다. 5초, 그리고 다시 5초.
“오비토.”
“응.”
“섬엔 돌밖에 없었지.”
“그랬지.”
그럼. 드디어 오비토를 돌아본 카카시가 눈을 휘어 접고 웃었다. 걷자. 여름에도 차가운 손이 오비토의 그것을 붙잡았다.
발에 휘어 감기는 모래의 감촉이 퍽 좋았다. 캐리어 옆에 나란히 신발을 벗어두고 걸었다. 손을 잡고 걸었다. 이어진 손을 타고 서로의 심장박동이 전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차가운 손과 따뜻한 손. 그것이 균형을 맞추는 순간을, 두 사람은 좋아했다.
"우리 사귄 지 얼마나 됐지?"
"2주, 정도?"
정말 얼마 안 됐네. 오비토도 카카시도, 사귀기 시작한 날부터 날짜를 셀만큼 섬세한 사람은 아니었다. 술도 마시지 않았고, 세차게 달리지도 않았는데 벌게진 얼굴로 고백하는 오비토를 카카시 역시 그만큼 붉어진 얼굴로 받아들였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사귄다고 해서 그 후의 행동이 특별하게 변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조금 더 자주 만나고, 자주 눈을 마주치고, 자주 손을 잡고. 자주 웃고. 서로가 서로에게 당연한 존재.
그러다가 가끔 오비토는 카카시를 생각할 때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꼈다. 어획량이 대박이 터졌을 때의 쾌감과 달랐고, 칭찬을 들었을 때의 부끄러움과도 달랐다. 그는 그것을 ‘내장이 꼬인다.’라고 표현했지만, 느낄 때마다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카카시가 보고 싶었다. 카카시는 오비토를 생각할 때 가끔 울고 싶어졌다. 그것은 린을 잃었을 때의 허망함과 달랐고, 오비토가 사라졌을 때의 불안함과도 달랐다. 그는 그것이 오히려 행복한 울음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카카시는 매우, 행복했다.
여름 밤바다. 울림마저 설렜다. 바다는 익숙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보는 바다도 익숙하지만. ‘연인’인 두 사람이 같이 바라보고, 발을 담그고, 조곤이 이야기하는 바다는 낯설었다. 적당히 차가운, 시원한 바닷물이 부드러운 모래와 함께 두 사람의 발등을 스쳐 지나갔다. 간지러워. 가볍게 웃으며 카카시가 발가락을 꼬물거렸다. 피식. 오비토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같이 꼬물거렸다.
“30 먹은 아저씨가 이러고 있는 거 보면 웃기겠다.”
“안 웃겨. 그리고 아직 서른 살 아니거든…….”
불퉁. 앞으로 튀어나온 입을 카카시가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오비토가 그것에 뚱한 표정을 지웠다.
아, 또 내장이 꼬인다.
아, 또 울고 싶어졌다.
바라본 눈동자는 전에 없는 진중함을 담고 있었다. 천천히, 천천히. 아주 느리게 얼굴이 가까워졌다. 서로의 입술이 닿는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눈을 감았다. 체온을 담고 있는 입술은 발에 닿은 모래처럼 부드러웠다. 톡. 처음 들어가는 당신의 집같이 조심스럽게 입술을 두드렸다. 치열을 핥다 뜨거움을 품고 있는 혀와 마주 닿았다. 숨을 불어넣으면서 이리저리, 꽉꽉 채웠다. 잡고 있던 두 손은 어느새 목과 허리에 닿았다. 막힌 호흡을 풀자 금방 박장대소한 것처럼 붉어진 볼이 보였다.
숙, 숙소 찾자! 으응, 그래! 허둥지둥 캐리어와 신발을 챙겨 모래사장을 벗어나는 와중에도 두 손은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Naruto > 단/중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비카카] 마음에 날개를 (0) | 2016.02.27 |
---|---|
[오비카카] 오로라의 끝에. (0) | 2016.02.10 |
[오비카카] 151231 오비카카 조각 (0) | 2015.12.31 |
[시카카카] 회사원AU (0) | 2015.10.25 |
[오비카카] 너와 나 *외전 (0) | 2015.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