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카카] The Red Shoes
또각. 높은 힐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카카시는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뼈가 두드러진 발등은 기울어져, 새빨간 구두 안에 갇혀있었다. 걸어보았다. 이미 하이힐에 익숙해진 카카시는 비틀거림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전신거울에 비친 모습이 이질적이었다. 얼마 신지도 않았는데 벌써 볼이 아팠다. 발목 뒤쪽에는 언제나 밴드가 붙어있었다.
ㅡ 네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 줄 거야.
믿지 않았다. 늘 들어가는 쇼핑몰 메인 배너에 커다랗게 달려있는 광고 문구에 눈길이 끌린 건,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에. 어느 순간 카카시는 구매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금세 도착한 택배상자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틈을 단단히 막고 있는 테이프를 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가만히 서 있었다.
하늘하늘한 스커트나, 원피스는 몇 번 구매해보았다. 입고 한 바퀴 빙 돌기도 했다. 옷으로 감춰도 숨겨지지 않는 선에 얼굴을 구긴 적도 많았다. 치마를 입는다고 여자가 되진 않아. 아니, 여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야. 그럼 왜? ……모르겠어.
어릴 적 여장을 당했다. 그녀들이 호들갑을 떨며 예쁘다고 칭찬을 했을 땐 솔직히 떨떠름했다. 가슴이 뛰는 것이 불쾌함 때문이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오비토에게 고백했더니 그는 그래?, 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 고마웠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 씁쓸했다.
먼지가 쌓인 상자를 꺼냈다. 구석에 박아두고 잊어버린 척했던 구두. 발을 집어넣는 입구가 새카맣게 보였다. 조심스레 밀어 넣자 꽉 끼었다. 둥그런 코가 형광등의 빛을 받아 광택을 뽐냈다. 걸터앉았던 소파에서 일어나자마자 비틀거렸다. 양팔을 뻗어 겨우 중심을 잡았다. 조금 전 자신의 모습이 우스워 폭소했다. 카카시는, 웃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옷가지를 한쪽으로 밀면 아무렇게나 접어 놓아둔 원피스가 몇 개 있다. 카카시는 프릴이 달린 것을 꺼냈다. 치마의 끝에 연분홍색이 감도는 옷이었다. 옷을 걸치고 비비를 발랐다. 파우더도 톡톡 찍고 쉐도우 뚜껑을 열어 눈가에 색을 칠했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화장이었으나 그마저도 처음보단 나은 편이었다. 거울 속의 자신이 익숙하고도 낯설어 카카시는 허탈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고 싶으니까 할 뿐이었다. 카카시는 화장을 하고, 원피스를 입고, 빨간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 춤을 췄다.
또각. 왼쪽으로. 또각. 오른쪽으로. 앞으로 발을 뻗었다가 뒤로 되돌리며 바닥을 찍었다. 구두가 내는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아도 보고 점프도 했다. 상대방에 있는 것처럼 두 팔을 뻗고, 안는 것처럼 팔을 굽혔다. 오비토. 고백하지 못한 게 하나 더 있어. 지금 나와 있는 것이 너이길 바라. 또각. 또각. 이대로 춤을 추며 오비토에게 닿기를, 카카시는 원했다.
굽에 힘을 주고 방향을 바꾸려다 그대로 넘어졌다. 윽. 외마디를 삼켜낸 카카시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숨을 쉬었다. 구두를 벗었다. 좁은 곳에 갇힌 탓에 붉게 달아오른 발이 보였다. 그는 가만히 그것을 쓸어내렸다.
“원하는 곳으로……라.”
피식, 실소를 흘렸다. 빨간 구두를 다시 상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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