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카카] 회사원AU
- 야근
“아직 있었어?”
어두운 곳에서 밝은 화면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시카마루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놀라게 한 쪽이 되어버린 카카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 저는 처리할 게 남아서요. 부장님이야말로 왜 바로 퇴근 안 하셨어요. 말은 없고 눈을 접어 웃는 카카시에 시카마루는 그가 대답할 마음이 없음을 알았다. 카카시가 ‘수고해’ 이르며 시카마루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그를 보다가 시카마루는 크게 하품했다. 드디어, 다 끝나간다.
* * *
점심시간. 시카마루는 오전 중 한껏 웅크리고 있던 허리를 쭉 펼쳤다. 뚝뚝 끊기는 소리와 함께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피곤했다. 야근도 했건만 또 아침부터 일이 쌓여있다.자신이 이 정돈데. 카카시 부장님은. 흘끗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딱 보기에도 피곤해 보이는 그가 주변을 신경 쓰지도 못한 채 일에만 매달려있었다.
“카카시 부장님, 점심 안 드세요?”
“아, 시카마루.”
옆에 다가가 팔을 툭툭 치기 전까지는 시카마루의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던 카카시다. 나중에 먹을 테니까 먼저 먹어, 하고 웃는 그를 시카마루는 믿을 수 없었다. 그랬지만.저렇게 얘기하니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없고. 억지로 끌고 가 밥을 챙길 의무도 없다. 시카마루는 얇은 코트를 걸쳤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20분 전.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로 대충 끼니를 때운 시카마루가 자리로 돌아왔다. 부장의 자리를 보자 검은색 가죽의 의자가 텅 비었다. 점심 드시러 갔겠지?
아직 휑한 사무실에 앉아 타자를 두드리기는 영 내키지 않았다. 시키마루는 담배를 하나 빼어 물고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리문이 묵직한 소음을 내며 열렸다. 담배 끝에 불을 붙이던 시카마루는 휴게실 한쪽에 자리한 인영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부장님? 어어, 시카마루. 반듯하게 뻗은 손가락 사이에는 짧은 담배가. 점심 드시러 안 나가셨어요? 으응, 그냥, 대충. 너는? 저도요.
“그나저나, 네가 담배를 피울 줄은 몰랐는데.”
카카시가 의외라는 듯 웃었다. 그건 시카마루도 마찬가지였다.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 카카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앉아 푹 꺼졌던 소파가 천천히 원래 모습을 찾았다. 느긋하게 피고 와. 가볍게 시카마루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그가 유리문 너머 멀어졌다. 시카마루는 웅성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는, 어떤,표정이었지?
* * *
카카시는 개발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승급해 부장이라는 이름을 땄지만, 하는 일은 비슷했다. 가끔 영업에 끌려가는 것 말고는.
ㅡ그래, 그게 문제다. 카카시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바로 어제 3차까지 달린 터라 속도 쓰렸다. 웃는 낯으로 계속 술을 청해오는 탓에 몇 잔이나 과하게 마신 건지.
카카시는 책상에 쌓여있는 서류와 확인해야 할 자료를 짚어보면서 속으로 한숨 쉬었다. 그는 산처럼 쌓인 종이뭉치들 맨 위의 것을 들어 올렸다. 깔끔하게 정리된 차트를 보면서 카카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저녁, 외근하기 전에 맡겨두고 간 건데 벌써 정리를 끝냈나.
시카마루는 유능하다. 카카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을 맡기면 군더더기 없이, 게다가 빠르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테다. 지금도. 시카마루는 물 흐르듯 자신이 할 일을 묵묵히. 티는 내지 않지만, 카카시는 그가 자신의 팀에 있다는 것을 내심 좋아라하고 있었다.
하루의 일정이 빼곡히 적힌 수첩을 꺼냈다. 점심을 먹고 회의. 그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예전부터 위쪽에 올려둔 것이 오늘에서야 회의 안건에 올랐다. 서로의 눈치를 보고, 방어하고, 공격하는. 긴장감으로 가득 찬 전쟁과도 같았다. 카카시는 웃는 낯으로 무장하고 전장에 올랐다.
* * *
시카마루는 오늘도 야근이었다. 그는 뻐근한 어깨를 이리저리 돌렸다. 시카마루가 엔터를 치고 쾌재를 불렀을 때는 이미 시침이 11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기지개를 쭉 켜며 고개를 돌렸을 때, 시카마루는 와악, 하고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크게 뜨인 시카마루의 눈과 마주한 미안한 듯 웃는 눈동자. 시카마루는 아직도 놀라 쿵쿵 뛰는 자신의 심장을 느꼈다.
“저번에 워낙 놀라기에 말 걸 타이밍을 기다렸는데 말이야.”
카카시가 자신의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몸이 뻣뻣하게 굳은 시카마루는 마냥 카카시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목소리를 냈다간 우습게 떨릴 것 같아서. 미안, 미안. 카카시가 난처하게 웃었다. 지친 듯 조금 처진 어깨가 시카마루의 시야에 들어왔다. 또, 술인가. 최근 영업일까지 겸한 탓인지 당신은 지쳐 보일 때가 많다. 시카마루는 그것이 못내 안쓰러웠다.
카카시가 의자에 기대었다. 삐걱, 하는 소리가 고요한 사무실을 채웠다. 슬쩍 감은 눈꺼풀에 피곤이 잔뜩 내려앉았다.
“집에서 주무시지.”
누워서 푹 쉬시는 편이 좋지 않나요. 덧붙이며 시카마루는 괜히 자기 자리를 정리했다. 이미 정돈이 끝나 깨끗한데도 그는 볼펜을 달칵거리고, 서류를 다시 꼽았다.
“시카마루, 불 좀.”
어느새 시카마루의 뒤로 다가온 카카시다. 여기서 피시게요? 뭐, 창문 좀 열어놓고. 또 능청스레 웃었다. 주머니를 뒤적여 라이터를 꺼낸 시카마루가 딱, 소리와 함께 불을 피웠다. 담배를 입에 문 카카시는 살짝 허리를 숙여 조그만 불에 그것의 끝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너도 어때? 하고 그가 담배를 건넸다. 거부할 수 없는 부드러움에 이끌려 시카마루는 건네진 것을 받아 불을 붙였다.
희미한 비상등의 불빛. 조금 더 강렬하게 눈동자에 박히는 담뱃불. 커다란 창문을 열어두고 달빛을 맞았다. 담배 끝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공중에 흩어졌다. 가만히 창밖을 응시하던 카카시가 설핏 미소 지었다. 가끔 이런 것도 좋네.
“안 좋은 일 있으셨어요?”
“음, 늘 있는 일이지. 조금 피곤할 뿐이야.”
안 그래? 하고 카카시가 시카마루에게 되물었다. 시카마루는 투명한 빛이 비치는 카카시의 눈동자에서 붉게 선 핏발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폐부에 들어찬 담배연기가 체한 것처럼 불편하게 감돌았다.
너무 무리하진마세요. 밥도 좀 챙겨 드시고요. 아하하, 상냥하네.
어느새 담배를 다 태운 카카시가 재떨이에 그것을 비벼 껐다. 시카마루도 그대로 행동을 반복했다. 그럼 우리 대리의 말을 듣고 오늘은 침대에서 잘까ㅡ. 장난기가 다분한 목소리에 시카마루는 얼굴을 붉혔다. 턱, 느껴지는 무게감. 카카시가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퇴근하자.”
너도, 나도. 내일 일이 쌓여 있잖아? ……네. 카카시가 외투를 걸쳤고 시카마루가 가방을 들었다. 나란히 나선 사무실은 캄캄한 적막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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