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카카] 150915
- 급하게 챙긴 카카시 선생님 생일 축전
일어나, 오비토. 오비토! 오비토는 누군가가 자신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찌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 졸려 죽겠어. 지금, 진짜. 정말로. 입술 밖으로 흩어져 일렬종대 해야 할 단어들은 축축한 입 안에서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그는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 뒤에야 겨우 눈을 떴다.
"요즘 밤에 뭐하길래 이렇게 자."
무심한 눈이 조금 걱정스러운 빛을 띠었다. 오비토는 공부라고 답했다가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는 것을 보고 금방 입을 다물었다. 장난하지 말고. 아니, 진짜. 별 거 아니야. 하하,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하얀 백지. 어지럽게 흩어진 잉크. 오비토는 여전히 그것들이 눈앞을 어른거리는 것에 질색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카카시는 그의 머리를 툭툭 두어 번 가볍게 스치듯 쓰다듬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 그럼. 별 거 아니라니까. 카카시는 곱게 접힌 눈동자의 붉은 선들을 기꺼이 무시했다.
캄캄한 하늘에 드문드문 반짝임이 박혔다. 하늘의 고요함을 똑 빼닮은 오비토의 집 안에서 유일하게 환히 빛나는 곳에 오비토가 있었다. 짧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고민하는 그의 앞에는 새하얀 백지가 몇 장 펼쳐져 있었다. '생일 축하해'라고. 나머지 여백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몇 자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혀있었다. 그 뒤로는 몇 개의 점뿐.
"뭐라고 적지…"
벌써 1주일째였다. 7일 밤낮 고민해가며 '생일 축하해' 뒤에 나열될 멋지고, 감동적인 구절을 쥐어짰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1일 뒤, 아니 몇 시간 뒤면 카카시의 생일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고민해 편지를 쓴 적이 있던가? 린에게 차인 고백 편지? 어버이날 아줌마께 쓴 편지? 오비터는 고개를 내저었다. 뻣뻣하게 굳은 어깨와 목이 고통을 호소했다. 목을 이리저리 돌리던 오비토의 눈에 목도리가 들어왔다. ……좋아해줄까?
카카시의 2주 정도 남았을 때, 쿠레나이가 놀란 목소리로 외치는 것을 들었다. 카카시 생일이 2주 뒤라고? 몰랐잖아. 그냥 지나가면 어쩔 뻔했어? 맞아. 큰일 날 뻔했네. 맞장구치는 린의 앞에는 책에 시선을 박은 카카시가 있었다. 그래서 알았다. ㅡ 그러니까, 전혀. 챙길 생각은 아니었는데.
할머니께서 길 찾는 것을 도와준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았다. 벌써 겨울용품을 꺼내 진열해 둔 쇼윈도 안에,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한 목도리를.
오비토 생일에 카카시가 자신이 갖고 싶었던 앨범을 사주었다. 그 보답? 벌써 반년도 더 지났는데? 평소에 잘해줘서? 그 카카시가? 오비토는 간절할 정도로 자신이 그 하얀 머리의 생일 선물을 구입해야할 이유를 찾았다. 찾고 찾았다. 뒤죽박죽된 머릿속에서 건져낸 답은 아니, 애초에 정해진 답이었겠지만.
어울려서. 자칫 촌스러워 보이는 색이 카카시에게 너무 어울려서. 오비토는 얇은 지갑의 입을 열었다.
종이 가방에 담긴 목도리를 들고 문구점에서 편지지도 샀다. 생일 케이크는 주말에 애들이 카카시를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한다고 했으니 생략. 마구잡이로 편지를 써 아깝게 버리기 전에 한 번 적어보기로 한 오비토가 백지를 꺼낸 것이 1주일 전.
쾅. 오비토는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아아, 공부 좀 열심히 할걸. 전혀 상관없는 후회를 하면서 그는 시계의 시침이 3을 향해 움직이는 것을 응시했다. 불과 4시간 후면 만날 텐데. 아직도 하얗다. 오비토는 한숨을 쉬었다. 미안, 카카시. 정말 모르겠다. 오비토는 작은 편지지를 쭉 펼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았다. 미안함을. 축하를. 감사를.
날이 밝았다. 며칠 밤을 새우다시피한 오비토의 눈 밑에 거뭇한 것이 내려앉았다.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서는 그의 손에는 종이 가방이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카카시는 벌써 자기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어제 읽었던 책과는 또 제목도, 두께도 다르다. 오비토는 망설였다.지금 줄까? 아니다. 책에 집중하고 있잖아. 카카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아니야, 화장실가는 것 같은데. 카카시가 돌아왔다. 지금? 아니. 또 책 읽고 있잖아.
결국, 친구들이 몰려와 카카시의 생일 축하할 때쯤이 되서야 오비토는 겨우 선물을 건네줄 수 있었다. 집에 돌아가서 풀어보길 원했던 오비토의 바람은 주변 아이들의 재촉으로 산산히 부서졌다.
포장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그는 창피했다. 금세 얼굴에 피가 몰렸다. 풋, 겐마가 웃었다. 은색 포장지 사이로 비쭉 튀어나온 초록색 목도리. 야, 오비토. 이건 좀 심하지 않냐? 아스마가 어까를 떨며 웃음을 참았다. 왜 그래, 다들. 예쁜데. 린이 예쁘게 웃었다. 정작 선물의 주인은 무뚝뚝한 얼굴로 목도리를 들추었다. 마음에 안 드나? 오비토는 괜히 긴장했다. 손바닥에 땀이 맺혔다. 툭 떨어진 편지. 카카시가 그것을 펼쳤다. '생일 축하해, 카카시.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 카카시는 얼마 적히지도 않은 글자를 마치 굵은 책 읽듯 천천히, 꼼꼼히 훑어내렸다. 진중한 눈빛이 똑바로 오비토를 향했다. 오비토는 몸을 굳혔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하여간 점을 없애야 해. 저 녀석 험한 말은 다 저 점에서 나오는 거라니깐. 엉뚱한 생각도 했다.
"고마워."
뭐? 오비토가 멍청하게 되물었다.
"고맙다고."
그리고는 피식 웃는다.
"잘하고 다닐게."
"어, 어…. 그래."
어색하게 대답했다. 떠드는 아이들의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기다란 손가락이 녹색 목도리를 능숙하게 개었다. 그것을 다시 종이 가방에 집어넣었다.
오비토는 다음 교시 내내 책상에 엎드려 필사적으로 자는 척했다. 카카시의 얼굴을 제대로 볼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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