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Bojo
덜컹거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흩어지는 색은 일직선으로 섞여 망막에 맺혔다. 오비토는 기차에 오른 지 얼마나 됐다고 금방 곯아떨어졌다. 목을 앞으로 푹 꺾어 자는 것이 영 안쓰러워 어깨에 그를 기대게 했다.
의자 밑으로 바닥을 디딘 다리 하나. 4년 만에 만난 오비토는 그 튼튼하던 다리 하나를 잃은 채였다. 굵고 단단하던, 열기를 품고 있던 종아리대신 차가운 금속 조각이 자리한 것에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난 네가 훌륭한 수영선수가 될 줄 알았어. 그 말 한마디를 마음 한구석에 숨겼다. 너는 쓰게 웃었더랬다.
언제던가. 좋아하지도 않는 빙수를 목구멍으로 집어삼키면서 네 눈동자와 마주쳤던 것은. 뿌리지 말라고 했던 연유는 기어코 눈꽃 사이에 숨겨 와서, 너는 능청스레 웃었다.다 알고 있었거든. 바보야. ……다, 알고 있었다고.
하얗게 내려앉은 끈적한 것이 바닥을 보일 때, 오비토가 핸드폰을 내밀며 코스모스를 보여주었다. 길 따라 흐드러지게 핀 것이 퍽 예뻐 왜 보여주나, 심술을 부렸더니 그는 씩 웃으며 같이 보러 갈래?, 하고 물었었다.
그 기억만이 색채를 선명하게 품고 머릿속에 남아, 그 뒤의 일은 그저 조각에 불과했다. 어쨌든 결국 우리는 지금 이렇게, 같은 장소에 있으니까.
덜컹덜컹. 소리를 내던 기다란 쇳덩어리가 서서히 속도를 늦췄다. 오비토, 일어나봐. 도착했어. 어? 뭐, 벌써? 그래. 일어나서 침이나 닦아라. 손수건을 건네자 네가 멈칫, 했다. 이유를 묻기도 전에 후다닥 닦고는 빨아줄게, 한다. 그래, 뭐. 그래라.
손을 잡아 준다고 했더니 기어코 혼자 내릴 수 있다며 절뚝거렸다. 하여간 저놈의 자존심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사람이 많은 곳은 부러 피했다. 오비토는 알고나 있을까. 항상 네 생각뿐인데.
부드러운 푸른빛. 분홍색. 자주색. 하얀색. 연한 꽃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코스모스 군락은 일제히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서 보고 있자면 그것에 홀릴 것만 같았다.
“예쁘다.”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러게. 옆에 선 오비토에게 시선을 돌리니 그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곧게 앞만을 향하고 있는 것에 가슴이 아렸다. 새카만 눈동자 안에 담긴 풍경 속에서 너는 무엇을 느끼고 있어?
한적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걸었더니 낡은 의자 하나가 보였다. 좀 쉴래? 그래. 잠시만 기다려. 오비토를 의자에 앉히고 몇 걸음 더 걸었다. 따스한 색의 코스모스. 얇은 줄기를 꺾었다. 그것을 한 아름 안고 총총 돌아오는 나를 오비토는 ‘지금 뭐하는 거야?’하는 눈빛으로 지켜봤다.
오비토의 다리를 눈앞에 두고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헐렁한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자 오비토가 거센 목소리로 항의했다. 야! 무릎 끝에 자리한 진갈색 자국이 오비토를 보지 않았던 세월 동안의 그를 알려주었다.
분홍색 코스모스를 하나 금속 사이에 끼웠다. 뭐……. 자주색 코스모스를 하나 더 그것 사이에 끼웠다. 야, 카카시……. 하얀색 코스모스를 끼웠다. 다시 분홍색, 자주색, 하얀색. 분홍색, 자주색, 자주색. 하얀색, 분홍색, 자주색. 가져왔던 꽃들을 전부 의족에 달았다.
“진짜, 예쁘다.”
웃었다. 시선을 위로 해 오비토와 마주하자 그의 눈동자에 핑글, 무언가가 투명함을 더했다. 팔을 들어 눈을 가리는 것을 나는 막지 않았다. 대신 너의 옆에 나란히 앉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하늘이 높았다, 맑았다. 문득, 눈이 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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