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카카] Don’t look.
01.
오비토는 자신을 눈을 가린 천을 느릿하게 더듬었다. 오비토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새카만 암흑만을 거닐었다. 그래도. 오비토. 한없이 다정하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오비토는 미소 지을 수 있었다.
02.
귓속으로 날카롭게 박혀 들어오는,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소리. 쉭쉭거리는 소리가 기분 나쁠 법도 하건만 그것에 섞여 들어오는 그의 목소리가 달콤했다. 내 사랑하는 사람, 내 연인. 당신. 그대. 보이지 않는 눈을 대신에 손을 뻗었다. 오비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맞잡아오는 손은 시체처럼 차가웠지만. 그의 몸을 껴안고 사랑한다 속삭였다.
볼 수 없는 눈은 멋대로 그의 얼굴을 상상했다. 두툼하고 발간 입술, 조금은 촉촉이 젖은 눈, 얇은 귓불, 창백한 낯빛. 얇고 단단한 몸을 더듬었다. 살아 움직이는 머리카락이 오비토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내달렸다. 이렇게 사랑하는데, 당신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 눈을 뜨고 똑바로 그대를 마주 본 순간 자신은 돌이 되어버릴 테니까. 그리고 그것이 당신을 얼마나 아프게 할지 아니까. 오비토는 검은 천을 눈에 둘렀다.
03.
카카시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넘실거리는 뱀들을 모두 찢어버리고 싶었다. 머리를 잘라버리고 싶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눈을 감고, 그것도 모자라 새카만 천으로 앞을 막아버린 연인은 순수한 미소를 내보이고 있었다.
가슴이 찢어졌다. 당신의 눈동자 색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칠흑의 밤일까. 흘러넘치는 용암일까. 그것도 아니면 제비꽃의 색일까. 보지 못하는 만큼 꽉 껴안고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했다. 사랑한다 속삭이고 그의 대답을 원했다. 자신의 가슴부터 옆구리까지 다정하게 쓰다듬는 손길이 좋았다. 멍청할 정도로 다정한 사람. 이제 그만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찾을 때도 되지 않았나. 뭐가 좋다고 이렇게 기분 나쁜 뱀을 사랑하는 건지. 답답함에 속이 턱 막히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가 자신의 곁에 있음에 감사했다.
04.
사랑해. 사랑해요. 그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서로의 손가락을 더듬었다. 뱀의 혓바닥 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축축한 입술이 덮쳐왔다. 입안은 뜨거웠고, 오비토는 그것을 정신없이 탐했다. 입천장을 간질이고 치열을 더듬었다. 치아의 개수마저 헤아릴 정도로 한참을 헤맸다. 인간과 똑같은 혀를 가진 카카시다. 하으. 윗니 뒤쪽을 훑자 신음이 터져 나왔다. 카카시는 바들거리는 손으로 오비토의 등을 끌어안았다. 혹여 기분 나쁘지는 않을까, 염려하던 마음도 혀를 얽는 순간 녹아 사라졌다. 뱀들이 바짝 몸을 곤두세웠다.
05.
오비토는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숲 입구까지 바래다주고 다시 한 번 사랑을 전한 후 뒤돌아섰다. 오비토는 한참을 귀를 기울이다 검은 천을 풀어냈다. 계속 감고 있었던 눈앞이 흐렸고, 그는 그 탓에 눈물이 흐른 거라 생각했다. 올려다본 하늘은 석양으로 물들어 붉디붉었다.
06.
오비토가 두고 간 물건이 있었다. 심장을 잡아먹을 정도로 불길한 예감에 동그란 그 무언가를 손에 잡지도 않았다. 거울, 같았다. 거울이었다. 분명했다. 몇백 년이나 되는 기나긴 기억 속에 자리한 그것이었다. 거울. 오비토는 왜 그것을 두고 간 걸까. 질려서? 이제 끝내고 싶어서? 양심이 있으면 스스로 죽어버리리라는 뜻일까? 카카시는 한동안 가만히 서서 뒤집어진 거울을 바라보았다.
07.
어김없이 검은 천을 두르고 나타난 오비토다. 나 왔어. 잠긴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카카시는 바랐다. 그의 입으로 직접 알려주길 바랐다. 자신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사랑하는 나의 연인. 그대. 당신. 그대의 말이라면 죽으라고 해도 따를 테니. 직접 말을 해주었으면 했다.
08.
“이걸 놓고 갔더군요.”
동그란 것을 오비토의 손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놓자 그가 금세 사색이 되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잘게 떨면서 카카시에게 물었다. 이걸, 봤어? 봤다면, 지금 이렇게 당신을 볼 수도 없었겠죠.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달싹이던 입술이 크게 벌려졌다. 무릎을 꿇고, 그가 빌었다. 미안해. 미안해, 카카시. 너무 지쳐서 그랬어. 너무. 너무……. 충동적으로! 모든 걸 그대에게 맡기려고 했어.
검은 천이 천천히 젖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이제 절대 안 그럴게! 크게 외치면서 던진 거울은 허공을 가르며 멀리, 날아갔다. 미안해, 사랑해. 울음이 섞여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오비토가 중얼거렸다. 사랑해. 사랑해, 카카시. 사랑해.
09.
사랑해. 그 말에 거짓은 없었다. 카카시는 확신했다. 애정과 집착, 허망함. 망설임. 달콤한 말로 그를 현혹하고, 사랑한다 속삭이면서 그를 붙잡았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눈으로 만들어 그의 판단을 흐렸다. 잘못은 오롯이 자신에게 있는데, 얼굴이 벌게지도록 울며 매달리는 그가 어느새 앞에 있었다. 조금 더 깊은 숲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뱀이 쉭쉭대는 소리가 유난히 거슬렸다. 달빛을 받아 풀숲 사이에서 빛나는 것을 집어 드니, 오비토가 멀리 내던진 거울이었다. 하. 뒷면에 박힌 붉은 보석을 보았다. 카카시는 기가 막힌 선택이라며 실소했다. 그는 거울을 뒤집었다.
10.
카카시는 한 사람만을 원했다. 자신을 사랑해줄 단 한 사람.
11.
오비토, 사랑해.
12.
오비토는 허겁지겁 숲 속을 내달렸다. 요란스럽던 뱀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쿵. 불안하게 가라앉는 심장을 다그쳤다. 그럴 리 없어. 고개를 저었다. 어젯밤, 이제 되었다며 돌아가라던 카카시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지치고, 슬픈 목소리였다. 자신 때문에. 조금 더 그럴싸하게 둘러댈걸, 사실대로 말해버리는 바람에.
정말 그것 때문에?
오비토는 입술을 악물었다. 거울을, 거울을 찾아야했다. 검은 천을 손에 꽉 쥐고, 오비토는 달렸다.
13.
자꾸만 발은 나무뿌리에 걸리고 잔가지는 오비토의 피부를 긁어댔다. 꽤 깊은 곳으로 들어왔는데도 뱀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숲은 고요했다. 불안하다. 불안했다. 발을 헛디뎠다. 흙 위를 굴렀지만 오비토는 금세 일어나 내달렸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댔다. 숨이 차 멈춰선 발치에 거울이, 보였다. 붉은 보석이 박힌 자신의 거울이었다. 고개를 들었더니. 아.
14.
카카시가 있었다.
15.
이미 돌이 되어 굳어버린 카카시가 있었다. 뒷모습으로 알 수 있었다. 덜덜 떨었다.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것은 카카시였고, 돌이었고, 자신의 연인이었고, 자신이 목숨 바쳐 사랑할 사람이었다. 오비토는 그것에 손을 갖다 댔다. 차가웠다. 딱딱했다. 조금의 온기도 품고 있지 않았다. 삐끗한 발목을 질질 끌며 그것의 앞으로 갔다.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뭐라도 맞은 사람처럼 떨었다. 그 앞에 서서 천천히, 천을 내렸다.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가 아니길.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아니길. 질끈 감은 두 눈을 떴을 때, 오비토는 무너져 내렸다.
그가, 웃고 있었다.
16.
카카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징그러워. 뱀들이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거울 뒷면에 박힌 붉은 보석처럼 새빨간 눈동자가 눈물을 흘렸다. 그를 놔줘야 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수백 년, 그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이었다.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결국은 놔줘야, 했는데. 오비토가 없으면 자신이 죽을 것만 같았다. 심장이 천 갈래로 쪼개지고, 그것을 돌로 내려치는 고통으로 가슴이 미어졌다.
카카시는 웃었다. 혹시라도 오비토가 자신을 찾아온다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웃는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툭. 거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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