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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uto/단/중편

[오비카카] 밤의 골목은, 때때로

by MaEl 2016. 9. 29.


[오비카카] 밤의 골목은, 때때로

 


 

중요한 것은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곳에 한 걸음이라도 먼저 가고 싶어 발을 놀리는 순간,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순간과도 같다. 눈을 감고 심호흡. 내쉬면서 한 걸음, 들이마시면서 한 걸음. 앞으로 두 발짝, 뒤로 한 발짝, 다시 앞으로 두 발짝. 가지고 있던 숨을 모두 내뱉으면서 눈을 뜨면 원하는 곳에 도착할 것이다.

언제나 캄캄한 그곳을 밝히는 것은 은은한 가로등 불빛뿐이다.

찢어져서 볼 수 없다.

 

 


01.

따닥. 돌을 갈아서 만든 바닥에 부딪히는 신발 소리가 듣기 좋았다. 카카시는 저 밑까지 숨을 뱉으며 눈을 떴고, ‘밤의 골목에 도달했다. 조금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안도했다. 새카만 페도라를 고쳐 쓴 그는 이내 걸음을 옮겼다.

 

02.

밤낮의 개념이 없었다. 그들은 잘 필요가 없었으니까. 머리 위를 비추고 있는 건 오로지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뿐이었다. 거리를 비추는 것은 그것과 상점에서 새어 나오는 빛들이 전부였다. 카카시는 고개를 들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암흑 사이에 가로등이 떠 있었다. 꼭 삼켜진 것만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03.

문득 어깨에 멘 가방이 무거워졌다. 오비토에게 부탁받은 책이 잔뜩이었다. 카카시는 갈 길을 서둘렀다.

 

04.

카카시는 바를 소유했고, 오비토는 도서관을 소유했다. 두 사람이 그곳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은 그 누구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둘은 오랜 시간 그것의 주인으로 존재했고, 앞으로도 그럴 터였다. 아마도.

 

05.

이야, 이게 누구야. ‘방랑자’! 이번에는 꽤 빨리 왔잖아?”

여전히 시끌시끌, 큰소리치는 익살꾼이 반갑게 카카시를 맞아주었다. 피식 웃으며 언제나 이랬어, 대꾸했다. 에이~ 아닌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다. 그저 웃어넘겼다.

나 없는 동안 바는 잘 봤어?”

말도 마시오, 말도 마시오! 바 분위기가 아예 딴판이라고 말 많이 들었지~!”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익살꾼의 눈이 반짝이기에 저쪽의 마술사가 가지고 다닌다던 카드를 건네주었다. 고맙소, 방랑자! 다음에도 언제든 맡겨만 달라구.

 

06.

바의 불을 껐다. 본격적인 관리는 몇 시간 뒤부터였다. 아쉬운 소리를 하며 돌아가는 주민들에게 미안함을 담아 미소 지었다. 바의 카운터 위에는 두꺼운 책들이 몇 권 자리 잡았다.

 

07.

도서관과 바는 붙어있었다. 도서관의 오른쪽에는 바가 있었으며, 바의 왼쪽에는 도서관이 있었다. 카카시는 가끔 그것이 맞는 것일까, 생각해보았지만 결국 아무래도 좋다는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

 

08.

주민들은 대부분 그들의 이름 대신 별칭으로 불렸다. 종류는 다양했다. ‘익살꾼’, ‘상인’, ‘수집가’, ‘탐정’, ‘사기꾼’, ‘괴물’, ‘살인마’. 카카시는 방랑자였고, 오비토는 학자였다. 아아. 그의 별칭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지나갔다.

 

09.

잊힌다는 건 두려운 일이지. 오비토가 중얼거렸다. 카카시는 하염없이 책을 읽어 내리는 그의 옆에 서서 덧붙였다. 그리고 잊는 것도.

 

10.

책 가져왔어.”

2층 다락방에서 내려온 오비토는 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연신 중얼거리며 마지막 계단을 내려온 그는 삐끗, 몸을 휘청거렸으나 카카시는 익숙한 일인 듯 가져온 책을 꺼내기만 했다. 말했던 책들이야. 신간이랑.

고마워, 고마워.”

슬쩍 카카시를 뒤에서 껴안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참, 카카시. 오랜만에 이름이 불려 몸을 떨었다. 다음에 나갈 때는―…, . 아니다. 나중에 말할게. 카카시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11.

오비토는 상당히 오래,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긴 시간을 밤의 골목에서 지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는 기억에 깨달았고, 곧바로 기록으로 그것을 남기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되짚어 올라가는 것은 지금에서야 그저 남의 일기를 읽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그는 상실이 두려웠다.

 

12.

희뿌연 기억.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13.

대를 이었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을까? 오비토는 수천 년 전의 기억을 되짚다 문득 깨달았다. 자신들은 상당히 짧은 주기로 죽음을 경험하고, 되살아난다. 그 죽음은 저쪽의 잠과 비슷하며 되살아났을 때 그 이전의 기억은 천천히 소멸한다.

조금이나마 서로의 기억을 간직하고 싶다면 이름을 불러주라고. 그때의 기억은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14.

일기를 덮고 오비토는 능청스레 입을 뗐다.

카카시, 둘만 있을 때는 이름 부르기로 했잖아?”

. 입을 다문 카카시가 깊은숨을 내쉬고 입술을 우물거렸다. ……오비토.

 

15.

XXXXXXX1번째 기록.

상점가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하얀 머리의 남자를 데리고 왔다. 이름은 하타케 카카시. 그는 곧 바의 주인이 되었다.

유독 그의 이름 부분이 진하게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쓰게 웃었다.

 

16.

XXXXXX65번째 기록.

이름은 불렀으니 잊어버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드디어 오늘은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가슴이 뛰었다.

 

17.

XXXX210번째 기록.

몇 번이나 메모를 남겼지만, 확실했다. 쌍방 이름을 불렀을 때는 기억하려고 하면 기억할 수 있다. 카카시. 카카시. 하타케 카카시.

 

18.

바에는 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새로 가져온 음악 역시 바의 분위기에 퍽 잘 어울렸다. 바로 앞에 앉아 능글거리는 낯으로 카카시를 지켜보는 오비토가 있었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에 입술이 굳었다. 자칫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아는 그는 웃음을 삼켰다.

주문하신 칵테일 나왔습니다.”

투명한 유리잔의 바닥을 슥 밀어내며 카카시가 일렀다. 땡큐. 홀짝이자 단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19.

1XXXX915번째 기록.

오늘도 언제나처럼 다디단 칵테일이었다.

잠시 펜을 멈추고 고민한 그는 계속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음에 카카시가 저쪽으로 나갈 때는 같이 데려가 달라고 할 생각이다. 그리고 물어볼 거다. 모두 잊고 같이 새로 시작하지 않겠느냐고.

 

20.

그가 어떻게 대답할지는 알 수 없었다. 모두 잊었을 때 서로를 기억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오비토는 펜을 내려두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학자라는 별칭이 우습기만 한 순간이었다.

 

21.

약속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언제가 되었든, 이 캄캄하고 희미한 골목에서 벗어날 때를 기약했다.

 

22.

카카시는 생각했다. 제한된 시간 동안 저쪽에 있을 때, 늘 그려보곤 했다. 찬란하게 부서지는 햇살 아래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두 사람을. 오비토와 자신을.

 

23.

점점 흐려지는 앞을 보며 생각했다. 또다시 끝이 왔구나. 오비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앞으로 쓰러지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카카시, 네가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나는 너의 모든 것을 떠올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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