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페스 / 오비톱>에 나올 오비카카 소설 '이상'의 약 8p를 공개합니다.
성인, 갱스터AU, 54p(떡제본)
01.
잘그락. 오비토가 약통을 내려놓았다. 새하얗게 흔들리는 약이 5알.
“선생님 댁, 다녀와야겠네.”
“그깟 약 없어도 3일은 버텨.”
“아니, 심부름도 받으러.”
아, 그래. 찬물을 꿀떡꿀떡 삼키더니 빈 컵을 탕, 소리 나게 놓았다. 침대에서 꾸물댈 때부터 알아봤지만. 악몽을 꾼 것이 분명했다. 몇십 년 전 화상으로 녹아내린 그의 반쪽 얼굴은 옷 주름이 잡힌 것처럼 우글거렸다. 대가로 빼앗긴 것이 오른쪽 눈이라 다행이지, 하마터면 양쪽 시력 모두 잃을 뻔했다. 카카시, 내 칼 좀. 오비토가 문 앞에 서서 손짓했다. 카카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소파 구석에 박혀있는 단도를 집어 던졌다. 제자리에 놔둬라. 알았어. 대답은 잘하지. 또 아무렇게나 내팽개칠 것을 아는 카카시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몇 건이야? 다섯. 꽤 많네. 엉. 돈 벌어 오마. 다녀와. 대답 없이 손을 흔든 그의 몸에 걸린 태그가 틈을 비집고 들어온 자그만 햇살에 반사되어 빛났다.
괜찮아? 다급한 음성. 흐린 시야에 들어온 것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벌게진 얼굴. 제법 단단한 두 팔로 피투성이의 자신을 들어 올렸더랬다. 그의 목에서 쇳조각이 줄과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알았다. 트와일라잇이구나. 어쩌지. 까무룩 정신을 잃으면서 어린 카카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양 손목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과 무거운 무게, 소란스러운 주변에 카카시가 눈을 떴다. 지하실일까.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았고 습기가 차 옷가지가 무거웠다. 멍한 눈동자를 굴리고 있자니 떨어지는 물벼락에 카카시는 옷이 무거운 건 지하의 습기 탓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깨어났나. 중압감. 위압감. 순식간에 가라앉은 공기. 카카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온몸의 세포들이 소리치고 있었다. 잘못 걸리면 큰일 난다고. 뼈도 못 추릴 수 있다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마주한 새빨간 눈동자는 진득하게 카카시를 응시하고 있었다. 입술을 꾹 다물었다. 시커먼 족쇄가 채워져 앞으로 쭉 내밀어진 팔이 덜덜 떨리는 것을 본 마다라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의 입술 끝에서 무심코 시선을 내린 카카시는 보고 말았다. 자랑스럽다는 듯이 길게 늘어트린 태그. A0. 아. 트와일라잇. 검은 머리카락. 붉은 눈. 우치하 조직이구나. 우치하의 우두머리가 트와일라잇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자, 바른대로 불거라. 뱀이 자신의 팔을 타고 기어갔다. 너는 안티 트와일라잇이냐?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그들의 아지트에서 나온 거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 사이로 흩어지는 붉은 선혈. 붉은. 붉은. 피를 토하며 쓰러지던 사람. 원수. 아버지의. 뒤집어쓴 핏물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잘 벼린 날붙이가 자신의 손가락 위로 내려앉았다. 그것을 보고 있었으나 보고 있지 않았다. 어디를 응시하는 것인지 모를 카카시를 보며 마다라는 칼을 거두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카카시가 중얼거렸다. 싫어, 다, 싫어. 트와일라잇도. 안티 트와일라잇도. 전부. 아버지. 아빠, 아빠.
우당탕. 급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와 쇠문을 잡아 연 것은 오비토였다. 자신이 데리고 온 소년이 고문실로 끌려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 안심하는 찰나 경비 둘이 자신의 어깨를 잡았다. 여긴 들어오면 안 되지, 꼬마야. 내가 데리고 왔다구요. 그래서? 지금 뭘 할 수 있는데? 분했다. 그들이 걸고 있는 태그는 B였고, 자신은 아직 그것에 못 미쳤다.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 승산이. 그래도 말이야.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조금만 버텨!”
퍼뜩. 몽롱한 정신을 파고드는 목소리였다. 고개를 확 들자 마다라가 담뱃불을 끄는 모습이 보였다. 다 태우지도 않은 것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메마른 목구멍을 사납게 긁어대는 것에 콜록거렸다. 열쇠를 이리저리 돌리던 마다라가 수갑을 풀어주었다. 안티 트와일라잇에 몸담고 있던 녀석은 아닌 것 같으니 풀어주마. 계속 족쇄가 채워져 뻣뻣해진 손을 쥐었다 폈다. 아직도 피가 묻어있는 것만 같아 몸서리쳤다.
계단을 올라오자, 괜찮아? 어디 다친 덴 없지? 하고. 흐릿한 정신에 들었던 목소리가 분명했다. 고마워. 아냐, 끌려가는 것도 못 막아줬고.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것에 눈을 마주하니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사람을 찍어 누르는 힘이 가득 차 숨이 막혔던 마다라의 것과는 달리 맑은 느낌에 갸웃했다. 오비토는 카카시의 행동에 의문을 품는 듯 했으나 곧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 어디 갈 곳은 있어? 아. 찔렸다.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더니 그럼 같이 지내자며 자신의 손을 마주잡고 흔들었다. 돈이 없어 안 된다고 하자 우치하 조직에 들어오면 되지 않느냐고. 순간 눈에 박히고 말았다. 그의 태그. 쇳조각. 애써 무시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어. 나쁜 건 안티 트와일라잇이잖아. 아버지를 죽인. 소년은 맑은 얼굴로 자신의 방이라며 카카시를 이끌었다.
“너는, 이름이 뭐야?”
“우치하 오비토!”
우치하? 그럼 정말 우치하 마다라의 손자쯤 되는 걸까. 너는? 하타케 카카시.
“하타케? 그 의사 선생님?!”
“……알아?”
“그럼! 트와일라잇도 치료해주시는 분이잖아. 소문 많이 들었는걸.”
“돌아가셨어.”
어? 계속 맑을 것만 같았던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미안해, 괜한 걸 물었네. 트와일라잇을 치료해줘서, 안티 트와일라잇한테 살해당했어. 왜 그래야 해? 왜? 어째서? 어째서! 목이 터지라 외쳤다. 핏발을 세우고 소리쳤다. 왜 그래야 했냐고, 어째서. 눈을 감을 때도 후회하지 않는다며 웃었던 건지. 머리가 아팠다. 눈가가 뜨거웠다. 봇물이 터지듯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에 이를 악물었다. 울지 않을 테다. 분명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울지 말라고. 머뭇거리던 오비토가 카카시를 안았다. 따스했다. 단단한 가슴이. 팔이. 그럼에도 부드러운 손길이. 카카시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카카시는 흐릿한 기억을 되짚었다. 카카시는 턱을 짚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오비토가 두고 나간 약통을 바라봤다. 제1조. 카카시는 검지를 쭉 폈다. 트와일라잇은 자신의 의지로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면 안 된다. 또한, 위험을 간과해 인간에게 위해를 끼쳐 모든 균형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제2조. 중지를 펼친 그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읊었다. 트와일라잇은 인간이 내린 명에 복종해야만 한다. 단, 그 명령이 제 1조에 반하는 경우에는 따르지 않아도 된다. 약지를 펼쳤다. 마지막. 제3조. 트와일라잇은 제1조와 제2조에 반할 우려가 없을 경우, 자기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카카시는 펼친 손가락을 천천히 접었다. 힘을 주어 주먹을 쥔 그는 숨을 내쉬었다. 눈앞으로 흩어져가는 자욱한 연기 속에서 빨간 눈을 빛내던 그가 보였다.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 날은 오비토가 태그를 바꿔 단 날이기도 했고, 삼 원칙을 모두 어긴 날이기도 했다. 높은 탁자 위에 올려둔 갈색 약봉지 여러 개를 접어든 카카시는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볐다. 끼익. 기름칠을 미뤘기 때문일까.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카카시는 인상을 찌푸리며 오비토를 욕했고, 그와 동시에 문에 끼어 있던 지저분한 편지지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보았다. 검붉은 무언가가 묻어있는 한 귀퉁이. 카카시는 직감했다.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거라고.
선생님. 오, 카카시. 언제나 사람 좋은 미소로 카카시를 맞이하는 사람은 츠나데였다. 진료하던 중이었는지 귀에 꽂힌 진찰기를 탁자에 내려두었다. 약은 식후 하루 세 번! 꼭 물이랑 함께 삼키고, 씹지 말 것. 알지? 호탕하게 웃으며 환자의 등을 팡, 내려치는 모습이 익숙해 카카시는 미소를 흘렸다. 환자 역시 불쾌해하기는커녕, 웃음을 숨기지 않고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그래서? 또 약이 부족하신가. 카카시는 멋쩍게 웃었다. 츠나데는 약을 너무 많이 먹어도 좋지 않다며 투덜거렸지만, 손은 부지런히 셀레브를 챙기고 있었다.
“이번에는 세 통 줄 건데, 또 금방 다시 찾아오면 그때는 한 알도 없을 줄 알아.”
“그럼요. 감사합니다.”
“늘 말하는 거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독성을 억제할 뿐이야. 아픈 걸 진정시키려고 진통제 성분도 들어있긴 한데,”
말을 멈춘 츠나데는 카카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얕은 한숨을 내쉬더니. 너무 먹지 말라고. 내밀어진 약통을 받아 든 카카시가 일러둘게요, 하고 답했지만 그녀는 믿지 않았다. 네가 말해도 그 녀석은 또 금방 먹어치울 게 분명하잖나. 휙,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뒤로 돌아선 츠나데는 의료기구들을 정리하면서 옆 구석에 밀어둔 갈색 봉지 여러 개를 카카시에게 하나씩 던지듯 건넸다. 심부름. 보수는 갔다 와서.
하늘이 흐렸다. 비가 올 것 같아. 생각하자마자 한 방울, 차가운 빗방울이 바닥에 수놓아졌다. 하나, 둘. 바닥을 한층 더 어두운색으로 물들였다. 나직하게 신음을 흘리는 남자의 다리에서 피가, 시린 빗물에 녹아드는 피가. 오비토의 눈동자를 더욱 붉게 물들였다. 주머니에 꾸깃하게 구겨 넣은 의뢰지는 물에 흠뻑 젖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무심코 손을 댄 곳에서 묻어난 잉크가 그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어두운 색의 바지에 대충 손을 닦아내다 떨어트린 칼이 쨍한 소리를 냈다. 움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남자가 몸을 떨었다. 얇은 빗방울은 여전히 온기를 빼앗긴 살갗을 두드렸다. 차갑게 식은 대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단 한 번의 깜빡임. 그 순간에. 오비토의 시선이 바닥을 향하는 그 순간에. 남자는 칼에 찔렸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였다. 죽어! 쇳조각을 돌로 긁어내는 소리가 오비토의 고막을 갈라냈다. 낮은 건물 사이를 비추던 햇빛마저 먹구름이 가려버려, 마치 밤처럼. 그 속에서도 석상처럼 굳은 남자는 보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처연히 빛나는 붉은 눈동자를. 멈칫. 살의를 담아 기세등등하던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 오비토는 남자의 손목을 쳐내어 위로 날아오른 벼린 칼을 붙잡아 그의 숨통을 끊어냈다. 불과 수 초 만의 일이었다.
조용하고, 격한 움직임에 흔들린 은색 태그가 잘그락, 소리를 냈다. 빗소리가 멎었다. 칼에 흥건한 핏물을 털어내고 가죽집에 꽂아 넣자, 목을 베인 남자는 힘없이 쓰러졌다.
“물어볼게 있었는데, 그런 꼴이어서야 대답할 수도 없겠군.”
단호하게 뒤돌아 나가는 오비토의 발치에는 차가운 시체가 가득했다. 땅바닥에 내던졌던 의뢰지를 도로 주운 그는 꽉 달라붙은 것들을 떼어내려 애쓰다 불쑥 화를 냈다. 마지막 남은 놈이었다. 알아볼 것들이 태산처럼 쌓여있었는데. 그러게 왜 이기지도 못할 내기를 해서! 좀 전의 상황을 되짚어보던 오비토는 종이 뭉텅이를 던져버렸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쓰러진 이들의 숫자를 셌다. 이 정도 실수쯤이야, 그는 용서해 줄 터였다. 눈이 욱신거렸다. 안대 위를 쓸어내렸다. 비가 온 탓이다.
탕탕. 두꺼운 쇠문은 둔탁한 소리를 냈다. 전해줄 것을 한 아름 안고 문을 연신 두드리자니 여간 짜증 나는 것이 아니었다. 카카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이 츠나데의 목록에 들어선 사람은 한 달이 넘도록 배달 시간을 어겼다. 어차피 또 집에 없을 거라고 판단한 카카시가 뒤로 물러섰다. 철컹. 자물쇠를 풀어내는 소리에 다시 시선을 올리고 말았으나. 카카시는 호흡을 멈추었다. 볼 때마다 헛숨을 삼키게 했다. 얄팍한 몸, 희게 뜬 피부, 얼굴 반쪽을 뒤덮은 화상 자국. 애써 잊으려 해도 악몽으로 되살아나는 기억. 남자는 몸을 떨면서 손을 내밀었다. 카카시는 말없이 봉투를 건네고 짧게 고개를 숙였다. 흘끗. 시선을 둔 곳에는 화상 딱지가 내려앉은 그의 손등이 있었다.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꾹 눌러 내렸다. 요즘 신경이 많이 곤두섰다. 미리 츠나데에게 언질을 받았다.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 날 화재사건의 피해자야. 너랑 오비토, 두 명 다한테 얘기하려다가 너에게만 일단 얘기해주는 거다. 계속 심부름 갈 테니까. 피해자. 카카시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짓눌렸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시는 건데요. 츠나데는 답이 없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부쩍 신경이 곤두섰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에게 정신이 쏠리는 것만으로 지쳤는데, 아침에 받은 혈서는 또 무엇이고. 한순간 모든 걸 버리고 도망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한 번 그랬으니까. 카카시는 인정할 준비를 하기로 했다. 아무 데나 주저앉아 흙먼지와 뒤섞인 바지를 털었다.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하려 머물렀던 것이 의외로 길어졌다. 맑아진 하늘에 걸음을 옮기니 뒤에서 누군가가 팔을 잡아당겼다. 겨우 욕을 집어삼키고 시선을 옮기니 오비토였다. 아니, 피에 절은 오비토였다. 인상을 구겼다. 그의 낡은 안대가 비를 먹어 색을 덧입었다.
“피 냄새, 싫어한다고 했잖아.”
“그래그래. 마스크를 깜빡했네, 너.”
순식간에 책임을 전가한 오비토를, 카카시는 가만히 응시하기만 했다. 왜 그래? 날이 선 목소리에 눈동자를 굴렸다. 약이나 받아. 많이 먹지 말래, 다음엔 정말 안 준다고. 그걸 믿어? 노친네 하는 소리지. 말조심하라고 했지.
“의뢰받은 건 제대로 처리했어?”
오비토는 침묵으로 답했다. 아연실색한 카카시가 따져 물었다. 이번에는 뭘 어떻게 한 건데? 다른 사람이었어? 다 죽였어? 슬금. 오비토가 시선을 피했다. 그는 머리를 짚었다. 당장에 생활비도 빠듯하지만, 그것보단 신뢰관계가 깨질 것이 걱정이었다. 다음은 제대로 처리한다니까. 다 얘기하고 왔어. 퍽이나. 툭툭 쏘아붙이며 카카시는 화상 입은 남자의 모습을 저 먼 한구석에 밀어 넣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카카시는 오비토와 성적인 관계를 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가끔 같이 자위를 했을 뿐이었다. 가르쳐 줄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에 겁을 집어먹고 덜덜 떠는 자신을 달래며 그는 제 것에 손을 뻗었더랬다.
오비토는 한 마리의 짐승처럼 굴었다. 살을 뜯어낼 것처럼 목덜미를 물어댔다. 번들거리는 붉은 눈동자는 항상 카카시를 압도했다. 왜 자신과 섹스하는 걸까. 확실한 답을 찾을 순 없었지만, 오비토가 쏟아부어야 할 감정의 대부분이 카카시에게 향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가족을 향한 동경, 연인을 향한 사랑마저 모두. 이해는 했다. 그의 곁에는 자신밖에 없었으니까.
허윽. 속을 치고 들어오는 덩어리에 숨을 삼켰다. 아직은 쾌락보다 고통이 컸다. 찢어질 듯한 압박감에 익숙해질 때쯤엔 카카시도 느낄 수 있었다. 카카시, 카카시. 그가 자신의 이름을 연호했다. 카카시는 그 순간이 좋았다. 세상에 자신밖에 없다는 듯 애절하게 이름을 불렀다. 입술을 겹쳤다. 혀를 맞대고 쓸어내렸다. 아. 윗니 뒤쪽을 긁는 그의 행동에 카카시는 달큼한 신음을 흘렸다. 오비토는 허릿짓을 계속했다.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천천히, 천천히 하고 외쳤지만 찌걱 이는 소리에 묻혀 스러졌다. 자신의 몸에 겹치듯 내려앉는 그의 몸이 있었다. 카카시는 오비토의 목을 껴안고 신음을 삼켰다. 오비토가 절정과 함께 자신의 목을 깨물었다. 아! 익숙해 질만도 했건만 불쑥 다가오는 고통에는 도무지 적응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그는 오비토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생각했다. 그것의 이름, 느낌, 그 형태까지도. 자괴감에 치를 떨며 선잠에 빠진 날에는, 그가 슬며시 입 맞추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죽도록 미웠지만, 그만큼 사랑했다. 애증. 카카시는 그것보다 더 좋은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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